결핍이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닐까
얼마 전, 가장 가까운 사람과 앞으로의 살림과 돈 문제를 어떻게 꾸려 갈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대개 그렇듯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그 사람이 문득 깨달은 게 있다며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부족한 게 있어서 행복한 것 같다고. 채울 게 있어야 채움도 있는 거니까.
돈이 모자라 고민하던 자리에서 나온 말이라 처음엔 웃음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을수록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우리는 결핍을 나쁜 것으로 여기고 늘 없애려고만 한다. 그런데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즐거움은 이미 채워진 것에서 오지 않고, 채워가는 과정에서 온다. 이미 채워진 것은 금방 당연해지고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라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이 가장 행복한 게 아닐까. 거기 도착하면 또 가고 싶은 곳이 생기고, 그곳을 향할 생각에 또 기쁠 것이다. 그래서 결핍은 늘 있고, 그게 감사하다. 결핍이 있음에, 그리고 채울 수 있음에.
저는 지금도 너무 행복하다고 답했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성공이나 부와 거리가 멀지만, 나아가는 과정이 행복한 순간이지. 모든 존재는 진화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는 영혼의 완성, 하나가 되는 진정한 완성이 아닐까?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지. 그래서 아무리 성공을 하고 돈이 많다고 해도 뭔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 있는 것 같아.”
이 글은 그날 나눈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 본 것입니다.

채워진 것은 금방 당연해집니다
오래 갖고 싶던 것을 손에 넣은 날은 분명히 기쁩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면 그것은 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느껴지고, 눈은 벌써 다음에 부족한 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 사람 말대로, 채워진 것은 금방 당연해집니다.
그래서 결핍을 없애야 할 문제로만 보면 끝이 나지 않습니다. 빈칸을 메우면 그 자리는 기쁨으로 남지 않고 그냥 기본값이 됩니다. 그리고 새 기본값 위에 또 다른 빈칸이 보입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일수록 "왜 나는 늘 부족하지"라는 질문을 오히려 더 자주 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노력이 모자라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원래 그렇게 생겼습니다. 사람은 아직 없는 것을 궁금해하고 그쪽으로 나아가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결핍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고장이 아니라, 사람을 앞으로 가게 하는 힘에 가깝습니다.
돈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
그날 제가 덧붙인 말 중에 저에게 더 중요했던 건 뒷부분입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돈이 많아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남는다는 것.
허전할 때 손이 가는 곳은 대개 정해져 있습니다. 인정받는 한마디, 다음 성과, 통장 잔고, 새로 산 물건, 끝없이 내려가는 화면. 잠깐은 차오르는 것 같다가 곧 다시 빕니다. 채우는 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채우는 자리가 맞지 않아서입니다.
명상을 오래 해 오면서 저는 그 자리를 결함이 아니라 원래 무언가가 있던 자리로 봅니다. 이유 없이 편안한 마음, 스스로를 믿는 힘, 모든 것과 이어져 있다는 감각 같은 것들입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려져 있을 뿐이고, 바깥의 것으로는 그 모양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느낌은 절망의 신호가 아닙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 아직 남아 있다는 표시입니다. 저는 그 길의 끝을 영혼의 완성,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결핍은 계속 있을 것이고, 그래서 계속 갈 수 있습니다.
사기를 당했던 해에 배운 것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몇 해 전 일이 떠오릅니다. 경기가 나빠 먹고살기가 정말 빠듯하던 때였습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던 저에게 개인적인 사건 사고가 겹쳤고, 그 와중에 사기까지 당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일을 이렇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인생이 너무 평온하게 흘러가니, 이런 시련을 통해 공부하라는 하늘의 큰 뜻이고 큰 사랑이라고.
처음부터 여유롭게 그렇게 볼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 시기에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 제가 붙잡은 건 아주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억지로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보는 것. 감사할 게 하나도 없다고 느껴질 때도 크게 숨을 들이쉬고, 한숨처럼 내쉬면서 "그래도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잖아" 하고 생명이 주어진 것 자체에 감사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 배운 것도 이번 대화와 같은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부족함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 감사를 가장 깊게 배우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결핍이 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이 저에게는 그냥 좋은 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부족함을 나침반으로 읽는 법
나침반의 바늘은 지금 서 있는 곳이 아직 목적지가 아니라는 걸 알려 줍니다. 부족함도 같은 일을 합니다. 그러니 부족함이 느껴질 때 "이걸 어떻게 없애지"보다 "이게 어느 쪽을 가리키고 있지"를 물어보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방향이 보이면 목표의 모양이 바뀝니다. 도착하면 끝나는 목표가 아니라, 그쪽으로 한 걸음씩 가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됩니다. 그때 채워가는 과정 자체의 기쁨이 생깁니다. 도착은 잠깐이지만 걸어가는 시간은 매일 있고, 도착하면 또 가고 싶은 곳이 생깁니다.
채우기 전에 1분, 빈자리에서 숨 쉬기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허전함을 알아차릴 즈음이면 손은 이미 휴대폰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몸으로 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넌 아직 부족해" 같은 목소리가 올라오면 반박하지 않습니다. "그런 목소리가 있구나" 하고 한 발 물러서기만 합니다. 처음 며칠은 별일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채우려는 손을 한 번 멈춰 본 것만으로 순환 하나가 끊깁니다.
한 가지만 덧붙입니다. 빈자리에 머무는 일이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이나 오래된 아픈 기억을 불러온다면, 혼자 버티지 말고 멈춘 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맞습니다.
일주일 동안 해 볼 것
연습이 부담스럽다면 이것 하나만 해도 됩니다. 일주일 동안 허전할 때 손이 가는 곳을 적어 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집었는지, 그게 얼마나 오래 채워 줬는지만 적습니다. 잘했다 못했다는 따지지 않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목록을 보면 내 손이 가는 곳이 몇 군데로 좁혀집니다. 그 목록이 곧 내 나침반의 눈금입니다. 무엇으로 채우려 했는지가 보이면, 원래 무엇을 원했는지도 함께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리
혼자 1분을 버티기 어렵다면 위코스모에 5분 명상부터 안내를 정리해 두었고, 처음이라면 위코스모 가이드부터 보시면 됩니다. 사기를 당했던 해에 만든 감사의 숨쉬기 명상(12분)도 함께 남겨 둡니다. 허전함을 몸에서 찾는 감각이 낯설다면 감정을 이해하려 애쓰기 전에 해석과 감각을 나누는 법을 함께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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