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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명상하다 유체이탈이나 빛을 봤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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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관해 받는 질문 중에 유독 많은 것이 있습니다. 명상을 하다가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눈을 감았는데 빛이 보였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 —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의미냐는 것입니다.

보통은 은근히 기대하는 답이 있습니다. 좋은 신호라는 말, 남들보다 앞서 있다는 말입니다.

그 답을 드리지 않습니다. 저도 그 길을 지나왔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헤맸기 때문입니다.

햇빛이 드는 방에 놓인 좌복
햇빛이 드는 방에 놓인 좌복

저도 겪었습니다

수행을 시작한 지 열아홉 해, 명상을 지도한 지 열네 해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이른바 신비한 체험이라 불릴 만한 일들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몸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감각, 무언가와 연결된 듯한 상태, 아주 선명한 시각적 장면들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때 저는 그 체험들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뭔가 선택받은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는 분명히 우월감과 자만심이 섞여 있었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그 체험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체험이 만드는 것은 대개 위계입니다

신비한 체험을 하고 나면 조용히 생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나는 이걸 먼저 겪었다. 저 사람은 아직 초보라 이런 건 모를 것이다.'

이 마음이 수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해롭습니다. 수행은 나를 낮추고 넓히는 일인데, 체험은 종종 나를 높이고 좁힙니다.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자리는 이렇습니다. 각자의 체험은 다 귀하고, 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강한 장면을 보고 어떤 분은 아무것도 보지 않습니다. 그 차이는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 그냥 사람의 차이입니다.

체험이 잦은 것은 재능이 아닙니다

제가 그런 체험을 자주 한 데는 사실 시시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기 전에 옷을 만드는 일을 십오 년 했습니다. 디자인하는 사람은 머릿속에서 형태와 색을 계속 굴립니다. 없는 것을 눈앞에 그려 보는 일이 직업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각 이미지가 발달한 사람은 명상에서도 장면을 잘 봅니다.

그러니 제 체험이 잦았던 것은 제가 깊어서가 아니라 제 뇌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무 장면도 보이지 않는데 자기를 아주 깊이 들여다보고, 삶이 조용히 바뀌어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분들이 훨씬 많고, 훨씬 멀리 갑니다.

체험이 없다고 잘못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혼자 하시는 분이라면 이 부분을 봐 주세요

여기부터는 조금 무겁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체험에 재미를 붙이면 그다음 명상은 그 체험을 다시 만나기 위한 것이 됩니다. 이게 시작입니다. 앉는 목적이 바뀐 겁니다.

그리고 이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나오기가 어려워집니다. 옆에서 "그건 별거 아니에요" 하고 말해 줄 사람이 없으면, 자기 해석이 자기 해석을 확인하는 구조로 들어갑니다. 그 안에서는 점점 더 특별한 의미가 붙습니다.

드물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일상이 무너집니다. 현실과 체험의 경계가 흐려지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해야 할 일을 못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래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나타나면 수련을 잠시 멈추시고 전문가와 상담하시기를 권합니다.

  • 현실이 현실 같지 않게 느껴지는 상태가 이어진다
  •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이 흔들린다
  • 잠·일·관계처럼 일상의 기본이 눈에 띄게 무너진다
  • 이건 수행을 못해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몸을 심하게 쓰면 다치는 것과 같습니다. 멈추고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창가 좌복에 앉아 목을 풀고 있는 사람
    창가 좌복에 앉아 목을 풀고 있는 사람

    그럼 무엇을 보면 되나

    체험 대신 볼 것이 있습니다. 일상입니다.

  • 예전 같으면 화냈을 자리에서 한 박자 쉬게 되었는가
  • 가까운 사람에게 하는 말이 조금 부드러워졌는가
  • 일이 안 풀릴 때 나를 덜 미워하게 되었는가
  • 이 셋 중 하나라도 움직였다면 그게 진전입니다. 아무 장면도 못 봤어도 그렇습니다. 반대로 대단한 체험을 했는데 이 셋이 그대로라면, 그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잘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이야기는 그냥 앉기에 대해 쓴 글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

    오래된 경전이든 깨달았다는 분들의 말씀이든, 핵심은 놀랄 만큼 단순합니다. 지금 여기에 있어라, 나를 바라보아라, 사랑하라. 이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게 너무 단순해서 팔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어렵게 해석하고, 특별한 사람만 아는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신비주의는 대체로 그 자리에서 자랍니다.

    누군가 당신의 체험을 두고 "이건 아무나 겪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보시면 됩니다. 대개 더 깊은 의존으로 이어집니다.

    보통리라는 이름에 대해

    제 이름은 성이 이씨라서 '리'에 '보통'을 붙인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이 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보통의 일상처럼 할 수 있는 명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영상에 굳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넣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 일이 신비하게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수행하는 문화가 케이팝처럼 평범하고 대중적인 것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문턱이 낮아야 하고, 문턱을 높이는 것이 바로 신비주의입니다.

    체험을 하셨다면

    마지막으로 실제로 어떤 체험을 하신 분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 기록은 하되 해석은 미루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적어 두고, 의미는 나중에 붙여도 늦지 않습니다.
  •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위로든 우월감이든, 비교에서 나온 것은 오래 못 갑니다.
  • 그 체험을 다시 만나려고 앉지 마세요. 그 순간 명상은 목적을 잃습니다.
  • 혼자 더 깊이 들어가지 마세요. 방향을 물어볼 사람 하나는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가까이에 그런 자리가 없다면 위코스모처럼 혼자서도 단계를 따라갈 수 있는 도구를 쓰셔도 됩니다.
  • 체험은 지나갑니다.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가 전부입니다.

    저는 여전히 앉습니다. 대부분의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게 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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