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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고기를 끊지 못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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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꿈을 꿨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들이 음식으로 준비되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그 생명들의 호기심 어린 눈이 기억납니다. 그 눈을 보다가 울면서 깼습니다.

꿈속에는 이상한 장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친환경'이라는 작은 표식이 놓여 있었고, 바로 그 옆에 고기가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깨어난 뒤에도 그 모순과 슬픔이 오래 남았습니다. 그래서 식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가운데를 비워 둔 식탁 위의 잡곡밥, 나물과 채소 반찬, 두부구이, 삶은 달걀, 보리차
가운데를 비워 둔 식탁 위의 잡곡밥, 나물과 채소 반찬, 두부구이, 삶은 달걀, 보리차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식탁 위의 고기가 원래 살아 있던 존재라는 것.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다고 해서 식탁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 달랐던 것은 순서였습니다. 머리가 먼저 납득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울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보다 마음이 먼저 울 때 삶의 방향이 바뀐다는 것을 이번에 몸으로 알았습니다.

꿈에서 깬 뒤 오래 남은 것은 그 작은 표식이었습니다. '친환경'이라는 말이 붙어 있어도, 그 옆에 쌓여 있는 것이 원래 살아 있던 생명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름표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것을 보는 일. 저는 식탁 위 고기가 원래 살아 있던 존재였다는 그 자각이 자비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상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명상이라고 하면 흔히 편안해지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더 깊은 의미는 나를 깨닫는 과정에서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을 느끼고, 큰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데 있다고. 그리고 그런 사람이 품는 꿈과 비전, 그리고 행동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명상 속에서 제 영혼을 만났을 때,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비심이라는 것이 내 안에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 마음으로 이 지구의 모든 생명과 함께 사는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의에서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 말이 매일 차리는 식탁까지 닿아 있었는지는, 꿈에서 깬 뒤에야 돌아보게 됐습니다.

예전에 완전 채식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처음이 아닙니다. 예전에 한동안 완전 채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래 이어 가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의지보다 환경에 가까웠습니다. 한국에서는 밖에서 사 먹을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비건 식당은 멀고 비쌌습니다. 겉으로 고기가 보이지 않는 메뉴도 국물이나 양념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일 먹는 일이 매번 멀리 가고 비싸게 치러야 하는 일이 되면, 마음이 있어도 오래 가기 어렵습니다.

채식 문화가 자리 잡은 미국을 여행할 때 그 차이를 크게 느꼈습니다. 같은 결심이라도 그 결심을 받쳐 주는 환경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지키기 쉬운 정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번에는 0 아니면 100으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완전 채식을 목표로 두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정했습니다.

  • 식탁의 중심은 채소와 곡류로 둡니다.
  • 단백질은 계란과 두부로 채웁니다.
  • 고기는 최대한 줄입니다. 끊는다가 아니라 줄인다입니다.
  • 이름을 붙이자면 플렉시테리언, 그러니까 유연한 채식에 가깝습니다. 완전 채식보다 느슨해 보일 수 있지만, 저에게 이것은 물러선 것이 아니라 오래 가기 위한 선택입니다.

    완벽한 채식이 아니어도 됩니다. 고기를 식탁의 주인공 자리에서 내려놓는 작은 조정이, 생명과 환경을 향한 현실적인 실천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채식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완전 채식을 해 보다가 한 번 무너진 적이 있다면, 채식을 '하느냐 마느냐' 둘 중 하나로 생각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채식은 무엇까지 먹느냐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뉩니다.

  • 비건 — 고기·생선·달걀·유제품 같은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습니다.
  • 락토 — 식물성 식품에 우유·치즈 같은 유제품까지 먹습니다.
  • 오보 — 식물성 식품에 달걀까지 먹습니다.
  • 락토-오보 — 유제품과 달걀까지 먹습니다.
  • 페스코 — 채식에 생선과 해산물까지 먹습니다.
  • 폴로 — 채식에 닭·오리 같은 가금류까지 먹습니다.
  • 플렉시테리언 — 평소에는 채식을 하되 상황에 따라 고기도 먹습니다.
  • 어느 단계가 맞는지는 사람마다, 사는 곳마다 다릅니다. 밖에서 먹을 일이 많은 사람과 집에서 주로 차려 먹는 사람의 출발점이 같을 수 없습니다. 지킬 수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처음부터 높은 단계를 잡았다가 내려놓는 것보다 낫습니다.

    고기를 주인공 자리에서 내린다는 것

    '주인공'이라는 말을 쓴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식탁이 고기 반찬 하나를 가운데 두고 나머지를 곁들이는 식으로 차려집니다. 고기를 빼면 식탁이 빈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고기를 줄이려면 고기를 참는 것보다, 가운데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우는 편이 쉽습니다.

    이렇게 해 볼 수 있습니다.

  • 메뉴를 고를 때 순서를 바꿉니다. "오늘 무슨 고기를 먹지"가 아니라 "오늘 무슨 채소와 곡식을 먹지"부터 정합니다.
  • 고기가 들어가는 날에도 자리를 옮깁니다. 접시 한가운데가 아니라 곁들이 한쪽으로, 양도 조금.
  • 밖에서 먹는 날의 기준을 따로 둡니다. 집 식탁과 바깥 식사의 기준을 처음부터 다르게 잡아 두면, 한 번 어긴 날이 '이제 끝'이 되지 않습니다.
  • 식사 전에 잠깐 멈추기

    식탁을 바꾸는 것과 함께 해 볼 만한 것이 있습니다. 먹기 전에 아주 잠깐 멈추는 것입니다. 1분이면 됩니다.

  • 수저를 들기 전에 숨을 한 번 쉽니다. 지금 얼마나 배가 고픈지 가볍게 느껴 봅니다.
  • 접시를 봅니다. 색, 모양, 김이 오르는 모습, 냄새.
  • 이 음식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한 번 떠올립니다. 곡식이 자란 밭, 채소를 기른 손, 그리고 고기가 있다면 그것이 살아 있던 생명이었다는 것.
  • 처음 세 입만 온전히 맛을 느끼며 먹습니다. 나머지는 평소대로 먹어도 충분합니다.
  • 고기를 먹는 날에도 할 수 있습니다. 탓하려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알고 고맙게 먹기 위해 멈추는 것입니다. 음식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거나 죄책감을 키우는 연습이 아닙니다.

    탓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을 탓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저도 완전히 끊지 않았습니다. 식탁에서 고기의 자리를 조금 옮겨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은 많습니다. 다만 그것이 식탁까지 내려오려면 마음이 한 번 움직여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그게 꿈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식사 전의 1분일 수도 있습니다.

    식단을 크게 바꿀 때는 몸 상태에 따라 챙겨야 할 영양이 다르니, 지병이 있거나 영양 관리가 필요한 시기라면 먼저 의사와 상의하세요.

    정리

  • 고기가 원래 살아 있던 생명이라는 것은 다들 압니다. 그래도 식탁이 바뀌는 것은 마음이 먼저 움직일 때입니다.
  • 완전 채식이 오래 가지 못했다면 의지보다 환경 때문일 수 있습니다.
  • 0 아니면 100이 아니어도 됩니다. 고기를 식탁의 주인공 자리에서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중심은 채소와 곡류로, 단백질은 계란과 두부로.
  • 먹기 전 1분 멈춰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떠올리는 것, 저는 그것을 자비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 먹기 전 잠깐 멈추는 연습이 혼자 잘 되지 않는다면 위코스모에 5분 명상부터 안내를 정리해 두었고, 처음이라면 위코스모 가이드부터 보시면 됩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에 대해서는 결핍이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닐까에 따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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