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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사는 게 힘들 때 — '인생은 고(苦)'를 받아들이고 나서 바뀐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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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한 번쯤 해 본 생각일 겁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대개 이렇게 이어집니다. 이 일만 해결되면, 이 시기만 지나가면, 이 사람만 내 마음을 알아주면 그때는 행복해질 거라고.

저도 오래 그렇게 살았습니다. 명상을 만나기 전의 저는 늘 두 가지를 묻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불행에서 조금 더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조금 더 사랑받을 수 있을까. 기준은 남들의 시선이었고, 의식은 늘 바깥을 향해 있었습니다.

지난달 하루를 정리하며 적어 둔 문장이 있습니다. 고(苦)와 행복은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은 그 문장에서 시작합니다.

이 글을 위해 만든 그림 — 오래된 돌담 틈에서 피어난 작은 들꽃
이 글을 위해 만든 그림 — 오래된 돌담 틈에서 피어난 작은 들꽃

힘든 일만 끝나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

우리는 행복을 고통의 반대편 끝에 둡니다. 힘든 것이 하나씩 줄어들면 그만큼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삶의 많은 시간을 벗어나는 데 씁니다. 지금의 불편에서, 지금의 관계에서, 지금의 부족함에서.

그런데 힘든 일은 하나가 끝나면 다음 것이 옵니다. 일이 풀리면 몸이 아프고, 몸이 나으면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합니다. 벗어나는 데 행복을 걸어 두면 행복은 늘 다음 칸에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도착하지 않습니다.

제가 불행에서 벗어나려고, 사랑받으려고 애쓰던 시절이 그랬습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의식은 늘 바깥에 있었고, 행복도 바깥의 무언가가 채워 줘야 오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고와 행복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고통을 덜어 낸다고 그 자리에 행복이 차오르는 것이 아니고, 행복하다고 고통이 지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둘은 저울의 양쪽에 올려진 무게가 아닙니다. 그래서 고통의 무게를 줄이는 데 온 힘을 쓰는 동안, 정작 물어야 할 것을 묻지 못합니다.

'인생은 고'라는 말의 원래 뜻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을 들으면 비관처럼 들립니다. 사는 건 원래 괴로운 거니 포기하라는 말 같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삶에 기본으로 들어 있는 것들의 목록에 가깝습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 싫은 것과 만나야 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헤어져야 하는 것.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누구도 이것을 피해 가지 못합니다. 잘못 살아서 받는 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라면 모두 지나가는 조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가르침에서 고에 대해 해야 할 일이 '없애기'가 아니라 '온전히 알기'라는 점입니다. 고통을 정확하게 보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내려놓으려면 먼저 그것의 실체를 정확하게 봐야 한다는 것, 명상에서 늘 하는 말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고를 알고 나면 힘든 일이 올 때 하나가 줄어듭니다. "왜 나만"이라는 억울함입니다. 고통 자체는 그대로여도, 이것이 나에게만 떨어진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삶이 원래 품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면 싸움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고를 받아들이면 남는 질문

인생이 고라는 것을 정말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벗어날까"라는 질문은 힘을 잃습니다. 다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그 자리에 다른 질문이 들어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질문은 더 깊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고단한 삶을, 나는 왜 그토록 간절히 원해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존재할까. 생명이란 무엇이고, 왜 이렇게 귀할까.

저는 이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과정이 깨달음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는 끝이 아니라 그 질문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두 질문의 차이는 힘든 날에 드러납니다. "어떻게 벗어날까"는 답을 찾으면 끝나지만, 곧 다음 고가 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는 다릅니다. 힘든 일이 와도 질문은 그대로 남아 있고, 오히려 그 일이 질문을 더 선명하게 만듭니다. 고통이 방향을 빼앗지 못합니다.

이 질문을 다른 길로 묻는 방법도 있습니다. 삶의 마지막 장면을 먼저 그려 보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그려 보는 명상에 적어 두었습니다.

편안해지는 것은 명상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명상 수업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분이 명상의 목적을 편안해지는 데 둡니다. 생각이 고요해지고, 감정이 가라앉고, 몸이 풀리면 거기서 끝내고 일어납니다.

그 순간은 분명 좋습니다. 그런데 다시 삶으로 돌아오면 어떤가요. 똑같습니다. 편안한 상태를 만드는 데서 끝났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잠시 덜어 내는 명상만 하면, 명상도 결국 '벗어나는 법'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편안해지는 상태를 시작으로 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고요해져야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의 우리는 생각과 감정, 오래 쌓인 관념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 안쪽의 '진짜 나'를 만나지 못하고 삽니다.

생각은 진짜 나가 아닙니다. 누가 "오늘 아침 몇 시에 일어나셨어요?" 하고 물으면 답이 떠오르지요. 생각은 그렇게 뇌에 저장된 정보가 출력되는 것입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지나가다 갑자기 나를 밀치면 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일어난 일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을 뿐, 나 자신은 아닙니다.

명상을 안 하고 살던 때의 저는 그 둘러싼 것들을 나라고 여겼습니다. 명상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랑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완전한 사랑이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행복이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편안한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편안한 상태에서는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내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고가 사라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고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자리가 생긴 것입니다.

질문을 품고 앉는 10분

편안함 위에 질문 하나를 놓는 순서입니다. 처음이라면 이 순서대로 해 보세요.

  • 몸을 먼저 풉니다(2분).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서서 목과 어깨, 온몸을 가볍게 털어 줍니다. 처음부터 가만히 앉으면 잡념이 먼저 몰려와 휴식 이상으로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몸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들어가 있던 긴장을 툭 내려놓으면 마음이 뒤따라옵니다.
  • 앉아서 숨을 바라봅니다(2분). 편하게 앉아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그대로 봅니다. 몸에서 힘이 들어가 있는 곳을 찾아 하나씩 힘을 뺍니다. 어깨, 턱, 미간이 대표적입니다.
  •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지나가게 둡니다(2분). 무언가 떠오르면 "아,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구나" 하고 봅니다. 붙잡지도, 밀어내지도 않습니다. 저장된 정보가 지나가는 것일 뿐, 그것이 나는 아니라는 것을 떠올립니다.
  • 가장 깊은 곳에 질문 하나를 놓습니다(3분). 마음속으로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 답을 만들어 내려 하지 말고 질문을 그 자리에 놓아둡니다. 이렇게 상상하면 쉽습니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아주 맑게 빛나는 사랑의 빛이 있는데, 생각과 감정이 먹구름처럼 그 빛을 가리고 있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바라봅니다.
  • 천천히 마칩니다(1분).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눈을 뜹니다. 떠오른 말이나 장면이 있으면 적어 두셔도 좋습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 질문의 답은 한 번에 오지 않습니다. 운동으로 근력을 키우듯 반복해야 조금씩 깊어집니다. 오늘은 질문을 놓아두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다만 명상할 때마다 편안함보다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보세요. 한 번에 가지 못해도, 방향이 있으면 조금씩은 가게 됩니다.

    힘든 날에 기억할 것

    고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힘든 일은 올 것이고, 그날도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때 그 생각을 "어떻게 벗어날까"로 끝내지 말고 한 걸음 더 가 보세요. 이 힘든 삶을 나는 왜 살고 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는 고통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생명이 왜 귀한지를 묻게 만드는 문으로요.

    가장 힘들던 시기에 제가 붙잡은 것은 아주 단순한 감사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결핍이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닐까에 적어 두었습니다.

    살아갈 이유가 보이지 않을 만큼 힘든 날이 이어진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자살예방상담전화 109(24시간, 무료)에 연락해 주세요. 명상은 그 곁에서 함께 쓸 수 있는 도구입니다.

    안내 음성을 들으며 따라 하고 싶다면 위코스모에 짧게 따라 할 수 있는 안내 명상이 있습니다. 처음이라면 위코스모 이용 가이드부터 보시면 됩니다. 명상이 무엇을 향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명상이란 무엇일까 영상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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